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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경제 시대배경과 발전과정 : 고전학파, 케인즈학파, 통화주의

by happiness22 2022.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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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경제는 산업혁명 이후 장기적으로 지속적인 성장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단기적으로는 호경기와 불경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발전해 왔습니다. 거시경제학 또한 1920년대 말 대공황 이후 장기적 경제성장과 단기적 경기변동 과정에서 나타난 시대 배경과 발전과정에 대해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저물가, 저실업 시대의 고전학파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대량실업이나 빠른 속도의 인플레이션은 상상하기조차 힘들었습니다. 구체적인 통계자료는 찾기 어렵지만 나폴레옹 전쟁 이후 19세기 말에 걸친 80여 년 동안 영국의 물가상승은 50%에도 못 미쳤고 실업률도 극히 낮았다는 역사적 사실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 시기의 경제이론도 실업과 인플레이션의 문제를 비교적 경시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스미스, 흄, 리카도, 밀, 마샬과 피구 등으로 대표되는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경제 전체에 걸친 장기적인 실업은 존재할 수 없으며, 비록 일시적인 실업이 발생하더라도 노동시장의 가격인 임금의 신축적 조정에 의해 쉽게 해소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화폐 수량설에 입각하여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화폐의 과다공급에 있기 때문에 화폐공급량만 적당한 수준으로 유지하면 인플레이션 현상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실업과 인플레이션의 시대의 케인즈학파

대량실업이 심각한 경제문제도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말과 1930년대 초에 걸친 대공황 전후였으며, 케인즈는 [일반이론]에서 실업의 원인을 총수요의 부족으로 보았습니다. 즉, 경제 내에 일할 능력과 의사가 있는데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까닭은 사람들이 경제 내에서 생산된 재화나 서비스를 충분히 구매하려 하지 않아서 결국 생산활동이 부진해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만약 가격변수가 신축적으로 움직이기만 한다면 보다 낮은 가격 및 임금 수준에서 초과공급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케인즈는 가격, 특히 임금에는 하방경직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침체가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분석은 자유방임적인 자본주의는 장기적으로 침체할 수밖에 없다는 케인즈의 견해에서 나왔습니다. 케인즈에 의하며 자본주의 경제는 고도로 발전할수록 저축성향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어서 소비가 감소하고 투자의 한계 효율은 낮아집니다. 반면에 유동선 선호는 과다하여 이자율이 너무 높아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고, 그 결과 총수요의 부족이 만성적으로 생겨 경기침체가 발생합니다. 이에 따라 국민소득은 비자발적 실업이 존재하는 불완전 고용 상태에서 균형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케인즈는 정부가 자유방임을 포기하고 능동적으로 경제에 개입하여 경제주체들로 하여금 보다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도록 유도하면 생산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실업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재정과 화폐금융정책을 써야 하며, 그중에서도 특히 재정정책이 유효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또한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수요 과다로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구매력을 감소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대공황을 배경으로 출간된 [일반이론]은 거시경제학이 경제학의 한 분야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에 따라 실업은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현상으로 그치지 않고 장기적이고 보편적인 현상이 될 수도 있으며, 인플레이션 역시 실물부문과 독립적인 단순한 화폐적 현상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광범위하게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실업과 인플레이션 문제는 노동시장이나 화폐공급의 분석만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으며, 경제 내의 여러 가지 총수요, 총공급, GDP, 이자율 등과 같은 집계 변수와 실업과 인플레이션 간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비로소 그에 대한 처방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경제학자들 사이에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케인즈가 [일반이론]을 발표한 이후 1930~1940년대에 걸쳐 그의 입장을 지지하는 케인즈학파와 전통적 경제학을 옹호하는 고전학파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계속되었습니다. 이러한 논쟁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내용에 대해 합의를 이루면서 종지부를 찍게 되었습니다. 첫째, 케인즈가 [일반이론]이라고 이름 붙인 이론은 사실 고전학파의 균형이론에 임금의 경직성 등 몇 가지 제한적 가정을 추가한 하나의 '특수이론'에 불과합니다. 둘째, 케인즈의 특수이론은 현실경제의 정책적 측면에서 고전학파의 이론보다 더 유용합니다. 새뮤엘슨은 이를 그의 저서, [경제학원론]에서 신고전학파종합이라 칭하고, 그 정책적 시사점은 케인즈적 재정과 화폐금융정책을 통해 경제가 일단 완전고용으로 돌아오면 고전학파의 가격분석은 정당성을 되찾게 된다라는 명제로 요약했습니다. 실제로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까지 현대 거시경제학의 주류를 형성하게 된 케인즈 경제학의 처방에 입각하여 각국 경제는 상당히 오랫동안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고인플레이션 시대의 통화주의

1970년대 세계 경제가 극심한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인플레이션이 세계 각국의 공동 관심사로 등장하게 되자 케인즈 경제학은 무력해지고 그 대신 프리드먼, 브루너, 멜처, 케이건 등으로 대표되는 통화주의가 각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화폐정책이 무력하다고 보았던 케인즈주의자들을 비판하였으며, 경제에서 통화량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재인식시키고자 하였습니다. 1960년대 말 케인즈학파 공격의 선봉에 선 프리드먼의 초기 연구는 1957년의 항상소득 가설로 대표되는데, 화폐이론이나 경기변동이론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연구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론이 케인즈학파가 주장하는 재정승수효과의 근본적인 전제가 되는 케인지안 소비함수를 비판하면서 경기변동이론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만약 프리드먼의 주장대로 케인즈학파의 한계소비성향이 일정한 것이 아니라 일시소득에서 보다 낮게 나타난다면 재정정책의 효과는 훨씬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케인즈학파 경제학자들이 경제를 근본적으로 불안정하다고 생각한 반면, 프리드먼과 슈와츠가 제시한 자료는 화폐수요에 대해 경제주체들이 대단히 안정적으로 반응하고 있음을 나타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그들은 준칙에 따른 화폐금융정책을 제안했고, 이는 오늘날 많은 중앙은행들이 사용하고 있는 물가안정목표제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또한 프리드먼은 1968년 미국 경제학회장 취임 연석에서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간에 역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기존의 주장을 공격하면서 케인즈학파 경제학을 완성하는 편리한 수단이었던 필립스곡선에 일침을 가했습니다. 그는 장기적으로 자연실업률이 존재하므로 확장적 총수요관리정책이 단기적으로는 실업문제에 도움을 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고전학파의 가정들이 적용되고 화폐가 중립적일 때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간에 역의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단기적으로 데이터에서 나타나는 역의 관계는, 경제주체들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인플레이션이 발생함에 따라 노동자들 중 일부가 화폐환상을 갖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프리드먼의 비판은 거시경제학 연구에서 경제주체의 기대를 전면에 부각했습니다. 통화주의자들은 총수요관리정책의 단기적 유효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고전학파적 사고를 일부 완화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장기적으로 임금이나 물가가 신축적으로 조정되어 시장이 균형을 회복하면, 정부의 역할이 민간의 경제활동에 안정된 기반을 제공하는 데 국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통화주의자들은 고전학파의 사고를 계승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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